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의문도 갖지 않은 채, 약은 완전히 믿으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가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된 동기를 해석하지 않으면 은 이해될 수 없다. 은 신을 향한 절대적 믿음을 잃은 많은 동시대인들의 존재와 죽음과 구원의 문제가 얽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면, 신은 그러한 고통을 완전하게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적어도 과학이 인간의 삶에 오늘날처럼 깊숙이 침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지하게 되는 과학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알의 알약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이다. 약은 인간에게 삶을 연장해 줄 수 있는 도구는 되지만, 죽음의 문제에는 해답을 줄 수가 없다. 삶에서 사용되는 약이 죽음 그 후에는 소용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은 예수의 고난과 상처, 구원의 역사(종교)가 약(과학)으로 대체되고 동시에 성경의 텍스트가 원래의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시에 죽음에 대한 테마를 버리지 않고 있어, 풍부한 의미를 파생시키는 프로젝트이다. 누군가는 신을 믿고, 누군가는 약에 의존하지만 종교도 과학도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간과해왔던 예술의 치유 능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데미안 허스트는 예술도 종교와 과학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술이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전제가 없이, 예술에 대한 다소 맹신적인 믿음 없이는 예술은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을 향한 믿음, 예술을 향한 사랑 없이는 예술은 이해될 수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는 종교와 과학과 예술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섞이게 한다. 그리고 예배당에 십자가가 있듯이,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이 존재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 없이는 ‘사랑’ 없이는 고통이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현실이며,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은 신을 향한 사랑이든, 약을 향한 사랑이든, 예술을 향한 사랑이든 믿음이 깔린 사랑인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길 기대하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어둠을 밝혀줄 거대한 것들 종교 과학 예술을 통해서 말이다. 신을 믿듯, 약을 믿듯, 예술을 믿고 사랑하면, 예술이 당신의 마음속에 이해될 수 있고, 이 이해는 기쁨을 동반하기에 당신의 고통을 제거해 줄 수도 있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완전하지도 않고, 잠시가 될지라도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의 고통의 진정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다양성과 파격성으로 현대미술의 악동이라 불리는 데미안허스트의 프로젝트 “New Religion” 풀세트 46여점의 조각과 사진, 이 모든 작품들을 넣은 컨테이너가 함께 전시되며 전시는 6월 28일까지 계속된다.